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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고전번역원 한국문집총간 노백헌집(老柏軒集)
조선 시대 노백헌(老柏軒) 정재규(鄭載圭, 1843~1911)의 문집이다. 원집은 사후에 사림들이 수습하고 49권 25책으로 편차하여 1912년에 활자로 인행하였는데 자세한 간행 경위는 알 수 없다. 부록은 원집 간행 후에 행장, 묘갈명 등의 묘도문자가 정리되었고, 연보(年譜)는 문인 정기(鄭琦)가 수년에 걸쳐 초창(草創)한 뒤 여러 문인들이 세 차례 교정을 하여 정본(定本)을 만들었다. 1936년에 아들 현춘(鉉春)이 저자의 족질 현수(鉉洙), 족숙 방엽(邦燁)과 함께 노백서사(老柏書舍)에서 연보 및 묘도문자, 문인록 등을 5권 2책으로 편차하여 활자로 인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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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관 데이터
한국고전번역원 한국문집총간 석릉집(石菱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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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석릉(石菱) 김창희(金昌煕, 1844~1890)의 문집이다. 아들 교헌(敎獻)이 저자가 생전에 정리한 고본(稿本)과 별저(別著)들을 바탕으로 1898년 활자로 인행한 것이다. 본서는 12권 3책으로 되어 있다. 권수에 총목이 있으며 권별로 목록이 있다.
한국고전번역원 한국문집총간 심석재집(心石齋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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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국지사 심석재(心石齋) 송병순(宋秉珣, 1839~1912)의 문집이다. 아들 증헌(曾憲)과 사방 사우(士友)들이 《학문삼요(學問三要)》, 《사례축식(四禮祝式)》 등과 유집(遺集) 14권 및 유서(遺書)를 모아 10여 책으로 선사하여 가장하고, 언행의 대개를 기록하여 연보를 편찬하여 35권 15책의 목활자본 《심석재선생문집》이 전하고 있는데 서발문 등의 관련 자료가 없어 명확한 간행 경위를 알기가 어렵다. 다만 말미에 ‘장계술고정사개간(長溪述古精舍開刊)’의 간기가 있는 것으로 보아 산청(山淸) 장계(長溪)의 술고정사(述古精舍)에서 간행된 것으로 생각된다.
한국고전번역원 한국문집총간 총쇄(叢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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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채원(茝園) 오횡묵(吳宖默, 1834~1906)의 문집이다. 《총쇄록(叢瑣錄)》 전체에서 시문(詩文)을 초선하여 수록한 24책의 괘인사본으로 현전하는 저자의 시문 선집 중에서 가장 방대한 분량이다. 체제를 살펴보면 《총쇄록》을 초선하여 만든 소규모 지역별 선집들을 통합하여 크게 시(詩)와 문(文)으로 재편하고, 다음 단계에서 시(詩)는 지역별과 시기별로, 문(文)은 문체별로 구분하여 편차하려고 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 본은 표지의 책차(冊次)가 어떠한 기준으로 순서를 정한 것인지 불분명하고, 권차(卷次) 역시 연결되지 않는 면이 있으며, 일부 중복 수록된 내용이 있는 것으로 보아 아직 정리 단계의 미정고본(未定稿本)로 생각된다.
동북아역사재단 덕흥리 고분벽화 - 인물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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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흥리벽화고분(德興里壁畵古墳)은 평안남도(平安南道) 남포시(南浦市) 강서구역(江西區域) 덕흥동(德興洞 : 구 지명은 평안남도 대안시 덕흥리)에 위치한 고구려 초기 벽화무덤이다. 이 벽화무덤은 묘실(墓室 : 무덤방) 안에서 발견된 묵서명(墨書銘)에 의해 피장자는 유주자사(幽州刺史)를 지냈던 진(鎭)이라는 자이며, 조성연대는 영락(永樂) 18년 즉 408년이라는 것이 밝혀져 주목을 받았다.
동북아역사재단 덕흥리고분벽화-인물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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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흥리벽화고분(德興里壁畵古墳)은 평안남도(平安南道) 남포시(南浦市) 강서구역(江西區域) 덕흥동(德興洞 : 구 지명은 평안남도 대안시 덕흥리)에 위치한 고구려 초기 벽화무덤이다. 이 벽화무덤은 묘실(墓室 : 무덤방) 안에서 발견된 묵서명(墨書銘)에 의해 피장자는 유주자사(幽州刺史)를 지냈던 진(鎭)이라는 자이며, 조성연대는 영락(永樂) 18년 즉 408년이라는 것이 밝혀져 주목을 받았다.
동북아역사재단 덕흥리 고분벽화 - 운문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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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흥리벽화고분(德興里壁畵古墳)은 평안남도(平安南道) 남포시(南浦市) 강서구역(江西區域) 덕흥동(德興洞 : 구 지명은 평안남도 대안시 덕흥리)에 위치한 고구려 초기 벽화무덤이다. 이 벽화무덤은 묘실(墓室 : 무덤방) 안에서 발견된 묵서명(墨書銘)에 의해 피장자는 유주자사(幽州刺史)를 지냈던 진(鎭)이라는 자이며, 조성연대는 영락(永樂) 18년 즉 408년이라는 것이 밝혀져 주목을 받았다.
동북아역사재단 덕흥리 고분벽화 - 인물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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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흥리벽화고분(德興里壁畵古墳)은 평안남도(平安南道) 남포시(南浦市) 강서구역(江西區域) 덕흥동(德興洞 : 구 지명은 평안남도 대안시 덕흥리)에 위치한 고구려 초기 벽화무덤이다. 이 벽화무덤은 묘실(墓室 : 무덤방) 안에서 발견된 묵서명(墨書銘)에 의해 피장자는 유주자사(幽州刺史)를 지냈던 진(鎭)이라는 자이며, 조성연대는 영락(永樂) 18년 즉 408년이라는 것이 밝혀져 주목을 받았다.
동북아역사재단 덕흥리 고분벽화 - 천정의 운문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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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흥리벽화고분(德興里壁畵古墳)은 평안남도(平安南道) 남포시(南浦市) 강서구역(江西區域) 덕흥동(德興洞 : 구 지명은 평안남도 대안시 덕흥리)에 위치한 고구려 초기 벽화무덤이다. 이 벽화무덤은 묘실(墓室 : 무덤방) 안에서 발견된 묵서명(墨書銘)에 의해 피장자는 유주자사(幽州刺史)를 지냈던 진(鎭)이라는 자이며, 조성연대는 영락(永樂) 18년 즉 408년이라는 것이 밝혀져 주목을 받았다.
인천광역시 계양구 문화재 어사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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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은지 바로 옆에 돌로 대를 쌓고 중앙에 어사대광서정해중수(御射臺光緖丁亥重修)라고 새긴 장대석이 놓여있다. 예전에 정자가 있었다고 하나 지금은 고종 24년(1887)에 증수하였다는 표지석만 남아있고 인조가 활을 쏘았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으나 욕은지와 더불어 기록에 의하면 인조보다는 부평에 왔던 분은 정조 한 분으로 효를 중요시하고 활쏘기를 즐겨했던 터라 정조 21년 (1797)김포 장능을 거쳐 아버지 사도세자의 원(지금의융릉)을 전배하기 위하여 부평을 지나갔는데 이때 점심 수라를 들고 휴식할 때 활을 쏜 것으로 보여지는 것이 더욱 신빙성이 있다
인천광역시 계양구 문화재 어사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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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은지 바로 옆에 돌로 대를 쌓고 중앙에 어사대광서정해중수(御射臺光緖丁亥重修)라고 새긴 장대석이 놓여있다. 예전에 정자가 있었다고 하나 지금은 고종 24년(1887)에 증수하였다는 표지석만 남아있고 인조가 활을 쏘았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으나 욕은지와 더불어 기록에 의하면 인조보다는 부평에 왔던 분은 정조 한 분으로 효를 중요시하고 활쏘기를 즐겨했던 터라 정조 21년 (1797)김포 장능을 거쳐 아버지 사도세자의 원(지금의융릉)을 전배하기 위하여 부평을 지나갔는데 이때 점심 수라를 들고 휴식할 때 활을 쏜 것으로 보여지는 것이 더욱 신빙성이 있다